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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비'는
2023년 개봉한 영화 "대외비"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정치 스릴러 장르로, 선거와 권력의 음모, 그리고 진실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 등 연기파 배우들이 집결한 이 영화는 ‘대외비’라는 단어 자체가 지닌 비밀성과 위압감을 극적으로 활용하며 관객들을 정치권의 뒷면으로 초대합니다. 단순한 권모술수 이상의 깊이를 지닌 이 작품은, 권력의 사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부서지고 때로는 괴물이 되어가는지를 사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관객으로서 우리는 "대외비"를 통해 정치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내용
진실과 권력 사이, 거래의 정치
"대외비"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시장 보궐 선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한때 이상을 품고 정치를 시작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시의원 ‘허창수’(조진웅)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우연히 권력 실세의 내부 문건, 이른바 ‘대외비’를 손에 넣게 되며, 이를 통해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거래를 시도합니다. 반면, 그를 막으려는 여당 후보 ‘권수영’(이성민)은 오랜 정치 경력과 거대한 배후를 등에 업고 거침없는 압박을 가합니다. 여기에 허창수의 옛 동지였던 기자 ‘정수진’(김무열)이 끼어들면서, 세 사람 사이에는 치열한 심리전과 역정보, 배신과 협잡이 얽힌 숨 막히는 전개가 이어집니다.
줄거리는 마치 한 편의 체스게임처럼 전개됩니다. 각 인물들은 진실을 무기 삼아 움직이고, 그 무기는 때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진실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떠안게 됩니다.
권력과 인간성의 대립
"대외비"의 가장 큰 강점은, 정치라는 구조적 문제를 인물의 내면 갈등과 맞물려 입체적으로 풀어낸다는 점입니다. 허창수는 처음에는 '정의'와 '시민'을 말하지만, 점차 권력의 쾌락과 생존의 본능에 휘말리며 타협하게 됩니다. 그의 인간적 고뇌는 관객으로 하여금 쉽게 그를 비난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관객은 그가 무너지기까지의 심리적, 상황적 과정을 함께 목격하면서 어느새 현실 정치에서 봐왔던 수많은 인물들이 겹쳐 보이는 기시감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 권수영은 철저히 정치적 목적과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는 단 한 번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모든 행동이 계산되어 있습니다. 그가 허창수에게 던지는 대사는 “이 바닥에 정의는 없어, 이익만 있을 뿐이야”라는 뼈아픈 진실을 대변합니다. 이러한 권수영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상보다는 현실적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비판으로 읽힙니다.
결국 이 영화는 권력 앞에서 인간성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정치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게임이 되어버린 현실을 냉소적으로 비판합니다.
진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외비"는 단순한 정치 드라마를 넘어서, 정보의 힘과 진실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속에서 '대외비' 문건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을 뒤집을 수도 있는 무기이며, 동시에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는 독이기도 합니다. 진실을 알리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 아니면 그 진실조차 또 다른 권력의 수단이 되는가?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지만, 이 모호함 속에서 현실 정치의 복잡성과 불완전성을 조명합니다.
관객으로서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진실이 결국 '승리'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누군가는 진실을 숨기고 살아남고, 누군가는 그것을 드러내려다 사라집니다. 이 구조적 불균형은 영화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비판이며, 동시에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무력감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진실을 향한 투쟁의 고귀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반드시 정의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차갑게 보여줍니다.
'대외비'가 남기는 메시지
"대외비"는 단순한 정치 드라마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와 정치의 민낯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일종의 ‘거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은 정치 뉴스 한 줄, 선거의 공약 하나를 예전처럼 순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진실은 언제나 대외비다." 그리고 그 진실을 아는 자들만이 권력의 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진실이 음모로, 정의가 전략으로 전락하는 이 씁쓸한 현실 속에서도, 영화는 한 가지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바로, 진실을 향한 질문 그 자체가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대외비"는 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게 만들며,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정치 스릴러로 자리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