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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리스'는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2017년작 "러브리스(Loveless)"는 러시아 사회의 단면을 서늘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정서처럼, 이 영화는 사랑이 부재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펼쳐 보입니다. 특히 한 부부의 이혼 과정에서 실종된 아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감정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를 관람하며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분노나 안타까움이 아닌,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이 결핍될 때 벌어지는 무너짐에 대한 근심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관객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 "러브리스"의 줄거리와 메시지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내용
가족이라는 허울 뒤에 감춰진 무관심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주인공 제냐와 보리스는 이혼을 앞두고 서로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의 아들 알료샤는 부모의 싸움 속에서 조용히 울며 존재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알료샤가 실종되고, 두 사람은 아이를 찾기 위한 수색에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 수색은 부모의 죄책감이나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인 체면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 장면들은 무척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알료샤가 문 뒤에서 부모의 다툼을 듣고 조용히 눈물짓는 장면은, 소외받는 아이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우리 사회의 가정 내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실종 이후에도 부모는 서로를 원망하거나 새로운 연인과의 삶에 집중하며, 정작 아이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은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이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허상일 수 있는지를 되묻는 대목입니다.
사랑의 결핍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러브리스"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현대 러시아 사회의 병리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회사에서의 위선적 태도, SNS에만 집착하는 삶, 외적 안정과 성공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이들 개인이 사랑을 잃고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냉소적인 대사와 텅 빈 아파트, 죽은 듯한 숲은 사랑이 사라진 삶의 황폐함을 형상화합니다.
관객으로서 이런 장면들을 접할 때 느껴지는 감정은 다소 무력함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사랑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SNS에 매달리며 외부에 자신을 포장하기에 급급한 제냐, 회사에서 가족 문제를 숨기며 해고를 피하려는 보리스 모두 진실한 관계보다는 겉모습과 생존이 우선입니다. 이것은 비단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 현대인이 겪고 있는 공통된 정서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진심보다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를 살게 되었을까요?
아이의 부재가 드러내는 진짜 상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끝내 찾지 못하고, 제냐와 보리스는 결국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이 결말은 전통적인 ‘해결’이나 ‘교훈’을 거부하고,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가장 슬픈 점은, 실종된 아이보다 더 큰 상실이 부부 사이에 있었던 사랑과 책임감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제냐가 러닝머신을 뛰며 자신의 삶에 몰입하는 모습은 잔잔하면서도 충격적입니다. 과연 그녀는 이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아이를 잃고도 여전히 자신의 외면을 꾸미는 일상에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현대인이 진정한 감정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관객은 여기서 묻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러브리스'가 남기는 메시지
"러브리스"는 겉으로는 실종 사건을 다룬 드라마이지만, 실상은 관계의 해체, 감정의 부재, 사회의 공허함을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아이가 사라진 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인물들을 통해, 감독은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랑이 지금도 유효한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으로서 마음에 남는 것은 아이의 실종 자체보다도, 관계의 단절과 그 무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화려한 성공도, 완벽한 이미지도 아닌, 누군가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함께 아파해줄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러브리스"는 그 사랑의 부재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그리고 그 부재가 가져오는 파장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경고장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단순히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